안녕하세요, 행복ing입니다. 오늘은 경제사의 중요한 시기인 1930년대 대공황에 대해 살펴볼 예정입니다.
이 시기는 세계 각국의 경제를 막대하게 파괴했으며, 많은 나라들이 회복하는 데 십여 년 이상이 걸렸습니다.
우리는 회복을 이끈 원인에 대한 이론들, 이 시기 여성들의 역할,
그리고 제2차 세계 대전이 어떻게 전환점이 되었는지 살펴볼 것입니다.
시작해볼까요?
1.회복의 롤러코스터
대부분의 국가에서 대공황 회복은 1933년에 시작되었지만, 이는 즉시 번영으로 돌아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1940년대 초기에야 대공황 이전의 국민 총생산(GNP)으로 회복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때도 1940년에는 실업률이 여전히 약 15%로, 1933년의 충격적인 25%에서는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었습니다.
회복에 이르게 한 원인에 대해 여러 가지 이론이 제시되었지만,
그 중 어떠한 것도 경제학자들 사이에 만장일치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습니다.
하나의 대중적인 견해는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이 회복을 촉진하거나 적어도 가속화시켰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논리는 루스벨트의 정책이 재플레이션(가치 상승)을 예고하며
명목 이자율을 높여 경제를 회복시키는 신호가 되었다는 주장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러한 재플레이션 과정의 중단, 1935년 은행법 같은 정책으로 이루어진 것이 1937년의 경기 침체를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1938년에는 GDP가 다시 상승 추세로 돌아섰습니다.
그러나 일부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대중적인 견해에 도전하는 복습파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뉴딜 내의 일부 정책들, 1933년 국가 산업 회복법과 1935년 국가 노동 관계법이 경쟁을 제한하고
가격 고정을 수립함으로써 대공황을 연장했다고 주장합니다.
노동 시장 개입을 강력히 주장한 경제학자 존 메이나드 케인스조차도
대공황의 종식을 뉴딜만이 가져온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또한, 금융량 증가가 경제 회복의 중요한 원인이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크리스티나 로머는 미국 달러의 평가절하와 유럽의 정치 상황 악화로 인한 대규모 국제 금융 유입에 의해
금융량이 증가한 것이 미국 경제의 회복을 주도한 핵심 원인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견해는 밀턴 프리드먼과 애나 J. 슈왈츠가 저술한 '미국의 통화사'에서도 공유되었습니다.
역대 연방 준비제도(Fed) 이사장 (2006-2014년 재임)인 벤 버낙이는
세계 경제의 침체와 그 후의 회복에서 통화 요인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또한 버낙이는 기관적 요인, 특히 금융 시스템의 재구성을 강조하였으며,
대공황의 기원과 해결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를 국제적 맥락에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2. 대공황 시기의 여성들의 경험
경제적 어려움은 사회를 재편하였고, 이 중에서도 여성들은 가장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 시기의 대부분의 여성들은 주부로, 가사 노동의 역할이 가족 소득이 부족함에 따라 강조되었습니다.
음식, 옷, 의료 보호 등의 관리에 심혈을 기울여야 했습니다.
대공황의 가혹한 현실로 인해 14개 주요 국가의 출산율이 1930년부터 1935년까지 12% 감소하였습니다.
고용된 여성들 - 주로 가벼운 제조업에 종사하는 여성들 - 은 블루칼라 직업보다 해고가 덜 했습니다.
그러나 사회적 압박은 종종 한 가족에서 한 사람만이 고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우선시하여
많은 여성들이 그들의 남편들이 일하고 있다면 일자리를 잃게 되었습니다.
눈에 띄는 것은, 영국에서는 이미 결혼한 여성들이 노동력에 참여하고, 대부분은 파트타임 일자리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1930년대 프랑스의 인구 증가가 느려짐에 따라 여성들을 위한 복지 프로그램이 증가하였고,
이는 1939년 가족 코드로 이어졌습니다.
이 법은 아이가 있는 가족에 대한 국가 지원을 늘리고,
고용주들에게 아버지들의 일자리를 보호하도록 요구하였습니다.
이는 이민자들에게도 적용되었습니다.
농촌 지역에서는 대공황이 여성들이 식품 생산을 위해 야채 정원을 확장하게 했습니다.
그들은 정원을 최적화하는 방법을 배우고, 고기와 계란을 위해 가금류를 사육하고,
먹이 주머니 드레스를 착용하며, 심지어 봉제 활동 같은 통해 사회적 상호작용을 확장하기도 했습니다.
도시 사람들도 적응하였습니다.
구전 역사에서의 이야기들은 그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어떻게 창조적으로 극복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저렴한 음식을 먹고, 식사를 재활용하고, 옷을 수선하고 교환하고,
새 가구와 가전제품을 미루고, 이웃들과 세탁과 재봉 같은 서비스를 교환했습니다.
일본과 독일과 같은 나라들은 디플레이션 정책과 절약을 촉구하는 방식으로 가계 소비를 형성하려고 노력했지만,
이러한 노력은 부분적으로만 성공했습니다.
3. 대공황의 종결: 제2차 세계 대전의 역할
경제사학자들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제2차 세계 대전이 대공황의 끝을 표시했다고 믿습니다.
전쟁은 대규모의 정부 지출을 초래했으며,
많은 경제학자들이 이로 인해 또는 적어도 이에 따라 대공황에서의 회복이 이루어졌다고 믿습니다.
다른 이들은 이가 회복의 주요 원인은 아니었지만, 실업률을 줄이는 데는 확실히 역할을 했다고 주장합니다.
유럽에서는 제2차 세계 대전을 앞두고 재무장 정책이 경제를 부양하였습니다.
1937년까지 영국의 실업률이 150만명으로 떨어졌고,
1939년 전쟁이 발발하면서 대규모인력이 동원되어 실질적으로 실업이 종결되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전쟁이 약 천만 명의 사람들을 민간 노동력에서 전쟁 역할로 이동시켰으며,
이로 인해 실업률이 10% 미만으로 떨어졌습니다. 전쟁은 또한 정부 지출을 높여 총생산을 증가시켰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은 또한 여성들에게 엄청난 변화를 가져다주었습니다.
많은 나라에서 여성들은 남성들이 전선에 나가면서 그들의 자리를 채우기 위해 산업에 참여하였습니다.
이는 여성들이 고용의 여러 부분에 참여할 수 있음을 입증했으며, 전후에 이어진 여성 해방 운동에 엄청난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결국, 1930년대의 대공황은 우리가 경제학과 경제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근본적으로 바꾸었습니다.
대공황은 경제학자들과 정책 결정자들에게 경제 활동에 대한 깊은 이해의 필요성을 강조하였으며,
이는 오늘날의 경제학과 우리가 경제 정책을 이해하고 적용하는 방식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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